나인투식스 도감 · 3화

그거 제가 하고 있었는데요

약 4분 · 직장 일상물
이 화만 읽어도 됩니다. 화마다 회사도 사람도 다릅니다

우리는 옷을 온라인으로 판다. 나는 상품을 골라서 값을 매기고 언제 얼마에 내릴지를 정한다.

주말 특가는 금요일 밤 12시에 열린다. 상품 스무 개가 한 번에 올라간다. 그때까지 값이 다 맞아 있어야 한다.

그 스무 개 중 여덟 개가 정 대리 담당이었다.

그리고 오늘이 금요일이었다.


9시 40분에 정 대리 자리를 처음 봤다.

없었다.

가방은 있었다. 모니터도 켜져 있었다. 메신저는 초록불이었다.

물어볼 게 하나 있어서 메시지를 보냈다. 급한 건 아니었다.

11시 20분에 또 지나갔다. 그대로였다.

초록불도 그대로였다.


정 대리는 하루에 서너 번 없어진다. 한 번 없어지면 기본 1시간이다.

어디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. 담배를 안 피우고, 병원 얘기를 한 적도 없고, 애가 있다는 말을 한 적도 없다. 그냥 없다.

그리고 초록불이다. 항상.

한번은 2시간 만에 돌아온 정 대리한테 옆자리 선배가 물었다. "어디 갔다 오세요?" 정 대리가 웃으면서 말했다. "아, 잠깐요."

그게 답이었다. 아무도 더 안 물었다.

안 물은 이유가 있다.

일은 되어 있기 때문이다.

정 대리가 맡은 상품은 값이 안 틀리고 사진도 제날짜에 올라온다. 지난달에 제일 많이 판 상품도 정 대리 거였다. 그러니까 "자리에 안 계시네요"라고 말하는 순간, 말한 사람이 남의 자리를 지켜보는 사람이 된다.

그래서 다들 아무 말도 안 한다. 그냥 기다린다.


지난달에 팀 회식 날짜를 정했다.

정 대리가 자리에 없었다.

없는 사람한테 예약을 맡기자는 얘기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. 아무튼 그렇게 정해졌고, 정 대리는 돌아와서 그 말을 전해 듣고 "네 알겠습니다" 했다.

회식 당일에 우리 열두 명은 예약이 안 된 가게 앞에 서 있었다.


2시 5분에 세 번째로 지나갔다.

없었다.

아침에 보낸 메시지에는 답이 와 있었다. 3시간 반 만이었다.

아 넵 확인해볼게요!

그리고 그 뒤로 아무 말이 없었다.


4시 50분에 특가 페이지를 훑다가 하나가 걸렸다.

삼만 이천 원짜리 코트가 삼천 이백 원으로 올라가 있었다. 0이 하나 빠졌다.

정 대리 담당이었다.

밤 12시에 그대로 열리면 주말 내내 그 값으로 팔린다. 재고가 이백 벌이다.

자리를 봤다.

없었다. 네 번째였다.

메시지를 보냈다. 안 읽혔다. 전화를 걸었다. 신호는 갔고 안 받았다.

초록불이었다.


5시 12분에 내가 고쳤다.

고치고 나서 수정 기록을 열었다. 누가 언제 뭘 만졌는지 남는 화면이다. 확인 삼아 본 거였다.

내 이름 바로 아래에 정 대리 이름이 있었다.

5시 10분. 나보다 2분 빨랐다.

같은 상품을 열었다가 값은 안 고치고 나갔다.

나는 그 화면을 좀 오래 봤다.


5시 35분에 정 대리가 자리로 돌아왔다.

"정 대리님, 특가에 코트 값 이상해서 제가 고쳤어요."

"아, 그거 제가 하고 있었는데요."

화를 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. 나무라는 것도 아니었다. 자기 일을 설명하는 사람의 말투였다.

"연락이 안 돼서요."

"아, 죄송해요. 잠깐 나갔다가."

잠깐. 내가 본 것만 45분이었다. 그 앞은 모른다.

정 대리가 자리에 앉아서 마우스를 잡았다. 화면이 켜졌다.

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.

따지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, 내가 가진 건 "네 번 봤는데 네 번 다 없었다"뿐이었다. 그리고 그 사람은 5시 10분에 그 상품을 열었다. 고치려고 열었을 수도 있다.

아니라고 말할 방법이 나한테 없다.


6시 10분에 팀장님이 지나가면서 말했다.

"특가 스무 개 다 됐지?"

"네."

"수고했어."

그러고 끝이었다.

말할 수도 있었다. 그런데 뭘 말하나. 코트 값이 틀려 있었고 지금은 맞다. 그게 전부다. 나머지는 내가 그 자리를 네 번 봤다는 것뿐이고, 그건 내가 남을 지켜봤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.


집에 와서 노트북을 열었다.

일할 때 늘 켜 두는 표 파일이 하나 있다. 시트가 여섯 개다. 다섯 개는 상품이랑 재고고, 마지막 하나는 이름이 참고다. 남이 봐도 아무것도 아니다.

시각    자리    메모
09:40   없음    답 13:12
11:20   없음    —
14:05   없음    —
16:50   없음    안 받음
17:10   —       정 대리, 상품 열람 (수정 없음)
17:12   —       내가 수정
17:35   복귀    "잠깐 나갔다가"

다 적고 나서 한 줄을 더 쓰려고 했다.

뭐라고 쓸지 몰라서 오래 앉아 있었다.

이 사람이 일을 안 한다고는 못 쓴다. 일은 되어 있으니까. 게으르다고도 못 쓴다. 나보다 많이 판 달도 있으니까. 나쁜 사람이라고는 더 못 쓴다. 오늘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으니까.

그런데 오늘 나는 그 자리를 네 번 봤고, 네 번 다 없었다.

그것만 사실이다.

그래서 그것만 남겨 뒀다.

도감 #003「그거 제가 하고 있었는데요형」

서식지  자리. 정확히는 자리가 아닌 곳
특징    하루 서너 번 사라진다. 한 번에 1시간
        상태 표시는 늘 초록불이다
        그런데 일은 되어 있다. 그래서 아무도 말을 못 꺼낸다
빈도    ★★★☆☆
판정    보류
대처법  없음