나인투식스 도감 · 2화

제가 이해를 못 해서 그런데

약 5분 · 직장 일상물
이 화만 읽어도 됩니다. 화마다 회사도 사람도 다릅니다

수요일 2시. 30분짜리 회의였다.

우리 회사는 남의 브랜드 광고를 대신 만든다. 이번 건은 화장품이고, 다음 주 월요일에 립밤 신제품이 나온다. 거기 맞춰서 SNS 이벤트를 연다. 정할 건 세 개였다. 응모를 어떻게 받을지, 몇 명한테 줄지, 해시태그를 뭐로 할지.

회의실에는 이 팀장님과 나, 후배 민지, 그리고 마케팅본부 김 팀장이 앉았다.

김 팀장은 우리 팀 사람이 아니다. 다른 층에 있고, 이번 건 돈이 그쪽 본부에서 나간다. 그래서 안 부를 수가 없다.


김 팀장은 시작 3분 전에 들어와서 노트북을 열었다. 화면을 우리 쪽에서 안 보이게 살짝 틀어놓는다. 매번 그렇게 앉는다.

내가 5분 설명했다.

응모는 댓글로 받는다. 쪽지로 받으면 우리가 하나씩 세야 하고, 남들 눈에 안 보여서 이벤트가 안 퍼진다. 경품은 신제품 세트고 서른 명한테 준다. 해시태그는 짧은 걸로 하나만 간다. 길면 사람들이 틀리게 쓰고, 틀린 건 나중에 응모 글을 모을 때 빠진다.

민지가 손을 들었다. "당첨자한테는 어떻게 연락해요?"

맞는 말이었다.

"댓글에 답글 달고, 주소는 그때 받죠." 이 팀장님이 정리했다.

거기서 결론이 났다. 댓글, 서른 명, 해시태그는 내가 세 개 뽑아서 목요일에 공유.

2시 12분이었다. 18분 남기고 끝날 수 있었다.


이 팀장님이 노트북 쪽을 봤다.

"김 팀장님, 본부 쪽은 괜찮으세요?"

김 팀장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.

"아, 네. 잠깐만요."

2초쯤 노트북을 더 봤다. 그리고 말했다.

"제가 이해를 못 해서 그런데, 이거 왜 댓글로 받아요?"

방금 5분 동안 설명한 거였다.

다시 설명했다. 이번엔 3분.

"아 네네. 그럼 쪽지는 왜 안 되는 거죠?"

"세는 것도 일이고, 남들한테 안 보여서 안 퍼집니다."

"근데 요즘 쪽지로 하는 데도 있던데요."

"있습니다. 주소 같은 걸 미리 받아야 할 때요. 이번엔 안 받습니다."

"왜 안 받죠?"

"당첨된 사람한테만 나중에 받으면 되니까요."

"아. 그러면 댓글로 받는 건 왜 그런 거였죠?"

두 번째였다.

시계를 봤다. 2시 17분.


김 팀장은 화를 내지 않는다.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. 오히려 그 자리에서 제일 예의 바르다. 매번 "제가 이해를 못 해서 그런데"로 시작한다. 자기를 낮추는 말이다.

그래서 아무도 못 자른다. 자르면 자르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된다.

2시 31분이었다. 예정 시각을 넘겼는데 아무도 그 말을 안 했다.

"아 근데 저는 아직도 이걸 왜 댓글로 받는지가 좀…"

세 번째였다.

"그럼 이건 브랜드 쪽도 아는 거예요?"

"지난주에 공유드렸습니다."

"저는 못 받은 것 같은데."

받았다. 메일에 있고 참조에 이름도 있다. 그 말을 하면 왜 못 봤는지로 10분이 더 붙는다. 나는 안 했다.


"근데 이런 건 원래 본부랑 먼저 맞춰야 되는 거 아니에요?" 김 팀장이 말했다. "사전에 협의가 됐어야 하는데."

여기서 나는 회의록을 띄웠다.

지난주 수요일. 같은 회의실. 안건 두 번째 줄.

이벤트 응모 — 댓글 방식으로. 본부 확인 완료.

네, 댓글로 가시죠. — 김 팀장

회의실이 3초쯤 조용해졌다.

나는 그 3초 동안 뭔가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. 무엇을 기다렸는지는 나도 모르겠다. 사과는 아니었다. 그렇게까지 바라지도 않았다.

김 팀장이 화면을 봤다.

"아, 그러네요. 제가 놓쳤나 보네요."

그게 다였다. 목소리가 하나도 안 흔들렸다. 부끄러움이 아니었다. 방금까지 잘못 알고 있다가 고친 사람의 얼굴이었다. 정보를 갱신했으니 다음으로 넘어가면 된다는 얼굴.

그리고 다시 노트북을 봤다.

회의는 2시 55분에 끝났다. 30분짜리였다.


복도에서 민지가 따라붙었다.

"선배, 아까 몇 분 걸렸어요?"

"55분."

"지난달에도 50분대였는데."

"…잰다고?"

"김 팀장님 들어오는 회의만요." 민지가 웃었다. "이상하죠. 재고 있으면 좀 덜 억울하더라고요."

나는 안 웃었다.

웃을 수가 없었다. 나도 재고 있었으니까. 방식만 달랐다.

그러느라 3시 회의에 5분 늦었다.


자리에 돌아오니 김 팀장한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.

주영님 아까 그 응모 방식, 혹시 간단하게 정리해주실 수 있을까요? 본부장님한테 설명드려야 해서요 🙏

20분 걸려서 문서로 썼다. 댓글과 쪽지를 표로 갈라놓고, 지난번 이벤트 참여자 수까지 붙였다. 회의에서 말로 한 것보다 훨씬 잘 정리됐다.

답이 왔다.

엄지 이모티콘 하나였다.


퇴근 전에 이 팀장님이 지나가면서 물었다.

"오늘 회의 왜 그렇게 길었어?"

말할 자리였다.

김 팀장이 회의록을 안 보고 들어온다고, 방금 정한 걸 다시 묻는다고, 지난달부터 매번 그런다고. 30초면 되는 말이었다.

"…설명이 좀 길어졌어요."

"그래. 고생했어."

이 팀장님이 회의 시간을 물어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. 나는 그걸 한 문장으로 덮었다.


이벤트는 월요일에 열렸다. 댓글이 사천 개 넘게 달렸다. 잘됐다.

수요일에 민지가 자리로 왔다.

"선배. 아까 본부 회의에서 김 팀장님이 그 얘기 했대요. 댓글로 가자고 본인이 제안하셨다고."

나는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.

민지가 내 얼굴을 봤다.

"…뭐라고 안 하실 거예요?"


집에 와서 폰을 열었다.

나한테 보내는 대화방이 하나 있다. 안에는 영수증 사진이랑 택배 송장 번호 같은 게 들어 있다. 남이 봐도 아무것도 아니다.

오후 11:04
30분 회의가 55분. 같은 질문 세 번
지난주 회의록에 답이 있었음. 그 답을 한 사람이 본인
"아, 그러네요. 제가 놓쳤나 보네요"
끝나고 20분 더 써서 문서 보냄. 답장은 이모티콘 하나
본부 회의에서 본인이 제안했다고 말했다고 함
민지가 물었을 때 아무 말도 안 함

마지막 줄을 지웠다가 다시 썼다.

이건 김 팀장 얘기가 아닌데, 하고 생각하면서.

달력에 같은 회의가 또 잡혀 있다. 다음 주 수요일 2시, 같은 회의실이다.

도감 #002「제가 이해를 못 해서 그런데형」

서식지  회의실. 업종 무관
특징    방금 정해진 걸 다시 묻는다. 회의록은 안 본다
        예의가 아주 바르다. 그래서 아무도 지적을 못 한다
빈도    ★★★★☆
대처법  없음